Ara YEON
Advanced biotechnology
Master student at École Polytechnique Fédérale de Lausanne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은 겁쟁이
해외에서의 삶과 여행에 대한 상상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항상 용기가 부족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대학생으로서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도전은 '교환학생'이었다. 교환학생에 선발되기 위해서는 높은 영어성적과 영어면접을 통과해야 했다. 하지만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있던 나에게는 그 마저도 높은 벽처럼 느껴졌고 결국 나는 도전하지 못했다. 그 다음은 '워킹 홀리데이'였다. 영어에 대한 성적이나 면접은 필요 없지만, 학업과 관련 없이 1년에서 2년 동안 휴학하고 모험을 떠나는 것이 두려웠다. 그렇게 두려워만 하던 나에게 해외 대학에 한달간 연수를 갈 기회가 생겼다. 학과에서 몇 명을 선발해 독일의 Saarland 대학교로 가는 프로그램이었고, 그 공고를 보자마자 내 마은은 너무나도 두근거렸다. 영어성적도, 영어면접도 그리고 휴학도 필요 없는 어쩌면 나에게 꼭 맞는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에 지원했고, 나는 학과에서 선발되어 연수를 가게 되었다.
한달 간의 프로그램 동안 독일대학교의 연구시설도 투어하고, 강의도 들으며 친구들과 주말마다 유럽의 여러 나라를 여행했다. 이때의 시간은 나의 20대에서 가장 행복한 기억과 추억을 만들어 준 특별한 경험이 되었지만 나의 부끄러운 영어 실력에 대해 더욱더 직면하게 되었다.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은 해외에서의 대학생활을 더욱 강하게 꿈꾸게 되었지만, 유학을 위한 금전적 문제와 영어실력이 현실을 직면하게 해 주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으로 진학하고 싶었던 나는 해외 유학과 국내 대학원 사이에서 고민할 수 있었지만 석사유학을 위한 현실적인 문제들을 당장 해결할 수 없어 국내 석사로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느리지만 도전하기
국내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영어실력 향상에 대한 욕심으로 학교에서 기본적으로 영어를 사용하는 IST 계열의 대학원에 진학했다. 연구실을 선택할 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요소가 연구실 내에서 영어로 미팅을 진행하는지 여부였다. 사실 굉장히 두려웠지만, 그래도 부딪혀야만 영어 실력이 향상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모든 한국학생들이 그렇듯, 영어 공부를 그렇게 오랫동안 해왔지만, 누군가와 언어로써 소통한 경험은 많지 않았다. 그렇게 영어로 랩미팅을 일주일에 두번이나 진행하는 연구실에 들어가게 되었고, 처음 몇달은 미팅에 참여할 때마다 긴장하고, 내 발표차례를 위해 영어 대본을 만들어 미리 연습해갔다. 1년, 2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긴장도 풀어져 자연스러워지고, 영어 대본을 외우던 습관은 내 영어실력을 향상시키는 발판이 되었다. 또 국제적인 활동을 많이 하는 연구실 덕분에 해외 전시회에 참여할 기회도 얻고, 해외 대학/업체들과 협업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느리지만 천천히 발전해갈 수 있었다.
국비장학생으로 선발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조금씩 생겨나면서 해외 유학을 다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금전적인 면에서 독립적으로 유학을 시작하고 싶었기 때문에 장학금 제도를 알아보았다. 다양한 장학금 제도가 있었고, 그 중에서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장학금은 ‘국립국제교육원 국비장학생’ 이었다. 사실 한국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니, 박사과정으로 유학을 가게 되면 연구실에서 월급을 받으며 생활할 수 있었지만 나는 전공을 살짝 변경해 해외 석사 유학 후 취업을 목표로 하게 되어 장학금이 더 필요한 상황이었다. 장학금을 위해서 1년이 넘게 진지하고 철저하게 준비했다. 미리 필요한 서류들의 원본을 해당 기관에 요청하고 추천서를 부탁드리기 위해 학부 교수님들께 연락도 드렸다. 이 장학금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희망하는 국가를 하나 선정하고, 지원 예정인 대학을 5곳 적어서 신청해야 한다. 만약 적어낸 5곳 이외의 다른 대학이나 다른 국가에서 합격을 하더라도 장학금은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신중하고 안정적으로 작성해야 한다. 나는 내가 왜 이 전공으로 또 왜 그 국가에 가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설득력 있게 말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또 내가 그 나라에서 유학을 함으로써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최종적으로 ‘스위스’라는 나라로의 대한민국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되었다.
아름다운 스위스의 유명한 공대
사실 스위스로의 유학을 생각해 본적은 없었다. 흔히들 ‘스위스’ 라고 하면 물가가 아주 비싸고 교육비도 매우 비쌀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나 역시 스위스 여행을 할 때 너무 좋았지만, 멋진 자연이 경이로웠지 스위스에 이렇게 유명한 공대가 두개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스위스 공대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스위스와 국제 연구를 함께 진행하던 한국에서의 석사 연구실 덕분이었다. 스위스 공대와의 다양한 공동연구도 있었지만, 내가 연구실에서 사용하는 많은 장비가 스위스 회사에서 만들어진 장비와 도구들이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래서 스위스를 알고 싶어 졌고, 우리나라 보다도 더 적은 인구를 가진 스위스가 어떻게 이렇게 바이오테크의 선진국이 되어있는지 배우고 싶었다. 이런 관심을 시작으로 스위스 공대에 대해 조사하며, 학비 역시 살인적인 물가와는 다르게 아주 저렴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스위스 로잔 공대에 지원해 합격하게 되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는 유학생활
처음으로 유학을 시작하고, 집을 구하고 은행계좌를 개설하는 모든 과정에서 시간도 많이 걸리고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씩 천천히 해결해 나가다 보니 어느덧 유학을 시작한지 1년이 지나가고 있다. 처음 영어로 수업을 듣고 팀프로젝트를 하는 일들은 당연히 쉽지 않았고 낯설었다. 하지만 나를 조급하게 밀어붙이거나 다그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 생활에 스며들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장학금을 받고 있지만, 모든 생활비까지 충족시키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working student로서 일도 시작했다. 우리 학교는 학생들이 학업과 병행하여 일을 할 수 있도록 포털을 아주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다. 그 포털을 통해서 다양한 연구실의 research assistant, 다른 학생들의 tutor, 수업의 조교 등 학업과 병행할 수 있는 여러 일에 접근하기가 좋다. 해외에 10년 이상 거주하신 많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아직은 아주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는 조금씩. 조금씩 배우면서 성장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하나씩 해 나가다 보면 나중에는 더 성장한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유학을 꿈꾸는 누군가에게
많은 학생들이 해외 대학생활을 꿈꾸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도전을 겁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안다. 나 또한 그런 학생들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항상 성실한 학생이었다고는 자부할 수 있지만, 영어는 언제나 내 성적표의 가장 낮은 점수였고, 유학을 쉽게 보내줄 만큼 여유 있는 가정형편도 아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유학을 가지 못한다고 조급 해 할 필요도 없다. 각자의 사정에 맞게 영어를 더 공부해야 한다면 공부하고, 돈을 더 모아야 한다면 돈을 좀더 모으고 현재의 일들을 방향성을 잘 잡고 천천히 해 나가다 보면 우리가 꿈꾸는 곳에 갈수 있는 기회들이 열릴 것이라고 믿는다. 또 학비가 비교적 저렴하지만 훌륭한 학교들도 많고, 학교내에서 학생으로서 생활비를 벌 수 있는 다양한 수단들도 존재한다. 다양한 이유들은 우리가 해외로 도전하는데 있어서 두려움을 만들어내겠지만, 차근차근 직면하고 해결하고 대안들을 찾아 나가면 결국 원하는 것들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공유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