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간의 논쟁 끝에, EU와 미국 정부는 미국 연구자들의 EU R&D 프로그램 참여에 대한 합의점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기후변화, 건강 등 긴급한 문제 해결을 위한 대서양간 과학분야 협력이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예상 밖의 진전은 유럽집행위원회가 지난 7월 발표한 955억 규모의 Horizon Europe 프로그램 사업 협약서 양식 초안으로 시작되었다. 이 초안은 주요 미국 대학들이 미국 연구자들의 EU 프레임워크 프로그램(Framework programme) 참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요구하던 법률 조항들을 담고 있다.
11월 8일, 백악관은 사이언스 비즈니스(Science Business)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와 같은 변화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백악관 과학기술정책국 부국장 콜 도노반(Cole Donovan)은 ‘이것은 환영할만한 발전’이며, 새로운 EU의 규정들을 검토하기 위해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대서양 간 협력 강화를 위한 제도 및 정책 개선을 위한 유럽집행위원회의 의지에 힘을 얻었다’라고 전했다.
몇몇 미국 및 유럽 대학들은 새롭게 발표된 협약서 양식이 각 대학의 협력에 끼칠 영향력 검토에 착수하였으나, 협약의 복잡한 세부사항들 때문에 아직 그 영향을 예측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한 미국 대학이 전한 것처럼 그들은 촉각을 세우고 있다.
7년간 955억 유로를 지원하는 Horizon Europe 프로그램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일본에서 미국까지 EU권외 국가들의 참여를 장려하는 이례적인 국제연구지원사업이다. 하지만 사업의 실제 진행방식은 (특히 미국에서) 잦은 논쟁 대상이 되어왔다. 외국인 연구지원을 위한 국세 지출이 대서양 양쪽의 정치인들에게 항상 환영받지는 못한다는 점도 그 이유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EU의 경우, 국제협력의 가장 일반적인 형식은 Horizon Europe 준회원국과의 협력이다. 준회원국들은 EU예산에 일정 분담금을 지불함으로써, 준회원국 연구자들은 EU예산을 직접적으로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미국 의회가 타국이 자국 예산 사용처를 정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로 미국은 준회원국 가입을 원하지 않았다.
법적 문제
이러한 이유로, 지난 수년간 EU는 미국연구자들이 직접 수혜를 받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소규모 사업들을 고안했지만 대부분의 사업들은 EU의 예산을 받지 못하고 미국 예산으로 연구를 진행하면서도 연구결과는 EU와 공유해야만 했다. 또한 몇몇 미국 대학들이 이러한 방법이 미국 내에서는 법정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면서 이러한 방법조차 난관에 부딪혔다. 유럽집행위원회는 이러한 법적 문제를 비껴갈 수 있는 방안으로 EU의 예산을 받지 않는 제3국 연구자들은 표준협약서에 서명할 필요가 없다는 새로운 조건을 제안했다.
트럼프 정부 때는 유럽집행위원회와 백악관이 공개적으로 강한 공격을 서슴지 않았으나, 미국의 정권교체와 새롭게 단장한 EU의 7개년 연구지원사업이 시작됨에 따라 대서양을 둘러싼 그간의 냉각 관계가 화해 분위기로 전환되고 있다.
버지니아 공대 前 부학장 카렌 드 포우(Karem De Pauw)는 ‘버지니아 공대 뿐 아니라 다른 연구 대학들도 국제협력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카렌 前 부학장은 현재 논의가 진행 중인 새로운 협력 건은 알지 못하지만, 많은 대학들이 EU권 파트너들과 ‘협력 및 네트워크 강화를 원하는 학생, 자교내 프로그램, 단과 대학 등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수정사항을 반영한 표준협약서 초안이 지난 여름 브뤼셀에서 발표되었다. ‘Model Grant Agreement’라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 188쪽으로 구성된 이 문서는 수혜 자격, 정산 규정 및 법적 의무 등 Horizon Europe 사업 협약을 위한 설명서이다. 최종본은 9월에 확정될 예정이었으나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유럽대학연합 총장 토마스 이스터만(Thomas Estermann)은 ‘아직 조정해야 할 것들이 많다’고 전했다.
미국 및 제3국 관련 주요 내용은 99쪽부터 시작된다. 이 문서에는 최초로 EU권외 연구자가 (EU 예산을 수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정식 협약서에 서명하지 않고 프레임워크 프로그램(Framework programme)에 참여할 수 있도록 명시되어 있다. 어쩌면 잘못된 거래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대부분의 미국 대학들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4년 이후 미국이 참여 건수는 1584건에 달하며, 대부분의 연구가 EU 예산 수혜 없이 진행되었다. (특정한 조건 아래 수혜한 EU의 예산은 2014년부터 1억2천9백5십만 유로가량이다.) 또한 과학분야 협력의 중요성은 지난해 코로나-19 바이러스 백신의 신속한 개발사례에서도 폭넓게 드러났다. 관련 연구의 대부분은 미국, EU의 연구자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미국대학들에게 새롭게 바뀐 ‘no-sign’ 조약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사립대학의 경우, 소속 변호사들은 협약이 잘못되는 경우 공동책임이나 단독책임을 지도록 강요하거나, 분쟁 발생 시 해결을 위한 모든 절차가 유럽 법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조항에 서명하기를 꺼린다. 새로운 협약은 이해 상충, 잘못된 기록 등과 관련된 분쟁을 포함한 여덟 가지 가능한 문제에 대한 안전조항에 동의한다는 조건으로 미국과 협력 EU 파트너가 협의하여 결정할 수 있는 세부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미국 대학의 변호사들은 이런 조항은 미국 사업 협약에 있어 매우 일반적이며, 협약의 장애요소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가능한 참여 형태
전문가들은 EU 예산 수혜를 받지 않는 미국 연구자들의 Horizon Euriope 참여가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대학들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혜택은 EU의 예산 수혜 범위 확장일 것이다. 이를 위해 현재 논의되고 있는 두 가지 방안이 있다.
첫 번째는 위탁협약이다. 몇몇 미국 대학들은 새로운 EU의 표준협약서가 비EU권 기관이 과제에 위탁기관으로 참여하는 것 즉, 유전자 분석, 임상 시험 지원 등의 특정 서비스를 지원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지급받는 방식을 명확히 금지하지 않고 있음에 주목했다. 하지만 유럽집행위원회는 아직 그 부분에 대한 명확한 의도를 표명하지는 않았다.
뮌헨공과대학 브뤼셀 사무소의 마리아 발레리 쉐크 (Maria-Valerie Schegk)는 미국기관의 위탁 참여에 대한 수요가 얼마나 있을지 명확하지 않다며, ‘자신의 예산에서 위탁 비용을 지급해야하는 유럽 대학에게 그다지 매력적인 선택지는 아닐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유럽에서 미국연구자들의 전문성이 필요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위탁 수요가 많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 번째 가능성은 현재 미국과 EU 사이에서 공식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공동연구프로그램 확장이다. 이는 하나의 대서양 공동 연구과제에 여러 연구비 지원 기관들이 참여함으로써, 각국의 연구자들은 대서양 공동 연구 과제에 참여하면서도 연구비 지원은 자국 연구비 지원기관을 통해 연구자들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형식이다. 이와 같은 형식의 연구는 대서양 관련 연구, 건강 관련 과제 등 특정 선정 분야에서 이미 진행되고 있으나, 진행 중인 논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더 많은 기회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 EU의 관련자들은 이 변화의 영향이 가시화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백악관의 서면 인터뷰에서도 향후 추가 협의가 있을 것을 암시하고 있다. 유럽집행위원회는 핵심 기술 분야의 ‘전략 자율성(strategic autonomy)’ 확보의 일환으로 양자, 항공우주 등 연구개발 막바지 단계에 있는 예민한 분야들에 대해 제3국 참여를 제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백악관 서면 인터뷰에서 미국 관계자는 ‘EU가 양자, 항공우주 등의 분야도 미국 연구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재개방해주기를 희망한다’며 ‘미국 정부는 양자 컴퓨터 공학 및 기술의 발전을 위해 매년 수백만 달러를 유럽 내 우수 연구소 지원에 투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백악관 관계자는 미국이 기초과학분야에서 주요 신흥 기술 분야에 이르기까지 대서양간의 협력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개별 경쟁에서 선두를 차지하지 못하는 것보다 공동연구를 통해 함께 세계 선두에 서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