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로운 출발은 헛발질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저는 '덕국덕질'을 시작했습니다. 독일 문화, 역사, 언어에 관한 책을 찾아 읽었고, 영미권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다른 문화권의 토양에서 학업을 이어나가고 싶다는 열망이 커졌습니다. 그리고 1년 후, 박사과정 1년 차가 끝나갈 무렵 큰 고민 없이 독일행을 결정했습니다. 사실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때 제 마음을 움직인 한 선배의 조언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떠나지 않으면 만날 수 없다."
몇 달간 독일어 공부와 연구 계획서 작성에 몰두했습니다. 다행히도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함부르크 대학의 한 교수님으로부터 박사과정 입학 확약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청운의 꿈을 안고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알스터 호수와 거기에 비친 단정한 화려함은 저를 매료시켰습니다.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가슴이 뛰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예상과 달랐습니다. 입국 후 일사천리로 진행될 줄 알았던 행정 절차가 지연되기 시작했고, 두 달 후 교수님은 돌연 짤막한 이메일과 함께 입학 절차를 취소해 버렸습니다.
"연구실 예산이 갑자기 줄어들었다", "다른 학생을 이미 선발했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때 배운 교훈은 지금도 명심하고 있습니다: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까지는 함부로 움직이지 말자.
정말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한국에서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왔는데, 이력서에 설명하기 어려운 공백이 생기는 것도 걱정이었고, 당장 생활비와 체류 자격도 문제였습니다. 더구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유로화 가치가 폭등하던 시기라 1유로가 2,000원에 육박했습니다. 제가 모아온 쌈짓돈은 예상보다 훨씬 빨리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물질적인 어려움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심리적인 공황 '내 결정은 잘못된 것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무모하게 행동한 것이 어리석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불확실성이 주는 두려움이었겠지요. '이제 늦기 전에 한국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뽑은 칼은 무라도 썰자는 심정으로 독일 전국의 대학에 있는 제 분야 교수님들께 연구 계획서와 자기소개서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은 한국과 달리 박사과정 입시가 없어 개별 교수님들과 직접 연락하고 인터뷰를 진행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습니다. 대부분 교수님들은 답장조차 주지 않았고, 인터뷰까지 간 곳에서도 거절당했습니다. 자존심이 무척 상했지만, 피드백을 요청했고 다행히 몇몇 교수님들은 성심성의껏 답변해 주셨습니다. 대부분의 피드백은 두 가지로 요약되었습니다:
"자기소개할 때 자신감이 부족했다."
"연구 계획서가 구체적이지 못하다.“
객관적으로 들으면 당연한 지적이었지만, 당시 저는 자존심이 크게 상했습니다. 이곳에서는 그저 '부족한 지원자' 중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우물안 개구리가 나를 위한 표현이었구나 싶었습니다.
이런 도전과 거절을 대략 50회 이상 반복했습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 새로운 교수님을 찾고, 연구 계획서를 수정하고, 이메일을 보내는 일상이 반복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연구 계획서는 점점 더 구체적이 되었고, 자기소개에서도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