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RC 서포터즈] 나의 유럽진출 경험담 – 임은미 (독일/이차전지)

자기소개

독일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뒤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현재는 독일 율리히연구소(IET-1)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이 글에서는 독일에서의 첫 유학 생활부터 한국에서의 박사과정, 그리고 다시 독일 연구기관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2025년 9월 ISE 전기화학회 발표

 

독일 석사과정에서 배운 것들

나는 독일 남부의 도시 에어랑엔(Erlangen)에서 화학 및 생명공학 분야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독일의 석사과정은 한국과 비교했을 때 연구 중심보다는 수업과 프로젝트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큰 편이었다. 물론 대학과 전공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내가 다녔던 학교의 경우 학위 과정 동안 약 13개의 전공 과목을 이수해야 했고, 각 과목은 교수와의 1:1 구두시험으로 평가받았다.

수업 외에도 7주 이상의 산업체 인턴십, 산업체와 함께 수행하는 프로젝트 과정, 그리고 마지막으로 약 6개월 동안의 학위 논문 연구를 진행해야 했다. 인턴십과 학위 논문 역시 학생이 직접 지원하여 기회를 얻어야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력서를 작성하고 면접을 준비하는 경험을 반복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이러한 과정들은 연구자로서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을 준비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쉽지 않았다. 학기 중에는 수업을 듣고, 방학이 되면 교수님과 시험 일정을 조율한 뒤 구두시험을 치러야 했다. 시험에 대한 부담도 적지 않았다. 같은 과목에서 두차례 낙제할 경우 학교에서 제적처리가 되고 이후 독일 내에서 같은 전공을 다시는 하지 못하기에 항상 긴장감을 안고 지냈던 기억이 난다.

특히 가장 힘들었던 경험은 산업체 프로젝트 과정이었다. 약 40명의 동기들이 네 명씩 팀을 이루어 한 달 동안 특정 과제를 수행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우리 팀은 Bayer Industry와 협력하여 특정 화학제품의 생산 공정을 설계하는 과제를 맡았다. 지금 생각하면 매우 좋은 경험이었지만 당시에는 쉽지 않았다. 독일어로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고, 팀원들과 적극적으로 토론하며 의견을 제시해야 했다. 한국식 교육환경에 익숙했던 나는 회의에서 먼저 질문하거나 의견을 내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외국인 학생으로서 팀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스스로 위축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이 경험이 이후 연구 생활에 큰 영향을 주었다. 질문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습관도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 지금 독일 연구소에서 다양한 연구자들과 협업할 수 있는 밑바탕 역시 이때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물론 힘든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화학 및 생명공학과 학생들이었던 우리는 직접 맥주를 제조하는 실습을 진행했고, 학과 행사에서는 학생들이 만든 맥주를 판매하기도 했다. 에어랑엔에서는 매년 봄이 되면 대규모 맥주축제가 열리는데, 동기들과 함께 커다란 프레첼과 맥주를 즐기며 독일 문화를 경험했던 시간들은 지금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렇게 여러 시행착오와 경험을 거쳐 석사과정을 마쳤고, 독일 생활에 대한 아쉬움을 남긴 채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에어랑엔에서의 석사 생활

한국 생활 그리고 박사 과정

석사 졸업 후 나는 한국의 한 사립대학교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석사과정 중 수행했던 산업체 인턴십 경험을 바탕으로 가스크로마토그래피(GC)를 활용한 화학 분석 업무를 담당했다. 매일 반복되는 실험과 분석 업무는 안정감을 주었지만, 한편으로는 연구자로서 더 깊이 공부해 보고 싶다는 아쉬움도 남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박사과정 진학을 고민하게 되었다.

해외 진학보다는 한국에서 박사과정을 선택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연구 중심의 교육 환경 때문이었다. 독일 석사과정이 폭넓은 교육과 실무 경험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면, 한국의 박사과정은 하나의 연구 주제에 깊이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당시의 나는 스스로 모든 연구 방향을 주도하기보다는 경험 많은 연구자의 지도를 받으며 성장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박사과정을 시작하기 전에는 에너지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훌륭한 지도 박사님을 만나 에너지 관련 나노소재 합성 연구를 수행하며 연구의 기초를 배울 수 있었다. 이후 배터리공학 분야로 연구 영역을 넓히고자 UNIST 에너지공학과에 진학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또 다른 훌륭한 지도교수님을 만나 본격적으로 배터리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독일에서 수업 중심의 석사과정을 경험했던 만큼 박사과정 초반은 쉽지 않았다. 연구 논문을 읽고 해석하는 것부터 연구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실험을 설계하는 과정까지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하지만 지도교수님과 지도 박사님의 도움 속에서 하나씩 배워 나가며 점차 연구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박사과정 동안 가장 큰 행운은 좋은 지도교수님과 지도 박사님을 만난 것이었다. 두 분의 지도 아래 약 4년 반 동안 연구를 수행하며 연구자로서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고, 논문 작성과 연구 수행 능력도 조금씩 키워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박사과정 마지막 시기, 다시 독일로 향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다시 돌아온 독일

내가 졸업한 UNIST는 율리히연구소와 함께 UNIST-Helmholtz 미래에너지혁신연구센터를 설립하여 공동 연구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박사과정에 입학한 이후에는 COVID-19의 영향으로 연구자 간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어려웠다.

박사과정을 마무리할 무렵, 지도교수님의 추천으로 율리히연구소에 3개월간 방문연구원으로 머물 기회를 얻게 되었다. 당시 나는 박사 졸업과 향후 진로를 동시에 고민하고 있었다. 독일에 다시 온 만큼 이 시간을 최대한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다.

방문연구 기간 동안에는 박사학위 논문 작성과 디펜스를 준비하는 한편, 독일 내 연구소와 기업의 채용 공고도 꾸준히 확인하며 지원했다. 동시에 율리히연구소에서 진행 중인 연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내가 수행해 온 연구 경험과 전문성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연구 미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연구자로서 어떤 강점을 가지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했다.

또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향후 연구 방향과 연구소 내 채용 가능성에 대해 질문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감사하게도 방문연구를 시작한 지 약 두 달이 지났을 무렵 현재 소속된 연구팀으로부터 박사후연구원 제안을 받을 수 있었고, 방문연구 기간이 끝난 뒤 다시 독일로 돌아오게 되었다.

율리히연구소에서의 연구 생활

현재 나는 율리히연구소(IET-1)의 배터리 연구 부서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IET-1은 전기화학 기반 에너지 저장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소로, 금속이온전지뿐만 아니라 금속-가스전지와 같은 차세대 배터리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박사과정 동안 이산화탄소를 활용한 금속-가스전지를 연구했기 때문에, 관련 연구를 지속할 수 있다는 점은 내가 율리히연구소에 남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다. 현재는 금속-가스전지 연구팀에서 다양한 차세대 배터리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율리히연구소는 독일을 대표하는 대형 연구기관 중 하나이며, 내가 소속된 연구소에도 약 200여 명의 연구자가 근무하고 있다. 다양한 전공 분야의 연구자들과 쉽게 교류할 수 있고 협업 기회가 많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물론 처음부터 적응이 쉬웠던 것은 아니다. 연구 문화와 업무 방식이 한국과는 다른 부분이 많았다. 특히 연구 제안서 작성이나 대형 연구과제 준비 과정은 박사과정 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영역이었다. 독일 내 연구비뿐 아니라 EU 연구과제에도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연구 제안서를 접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석사때와 마찬가지로 힘들 때는 연구소 주변을 혼자 산책하며 눈물을 흘렸다. 우리 연구소에는 큰 인공호수가 있는데 나는 가끔 이 호수는 연구소에 근무하는 많은 연구원들의 눈물로 만들어진건 아닌가라고 생각해본다.

하지만 어려움보다 더 크게 남는 것은 함께 연구하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이다. 독립적인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그룹 리더들, 그리고 연구의 어려움을 함께 고민하는 동료들 덕분에 지금까지 잘 적응할 수 있었다. 이제는 나 역시 IET-1의 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지개가 뜬 율리히 연구소의 인공호수

독일 연구 생활의 현실적인 비용

해외 생활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재정적인 부분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나 역시 처음 독일 유학을 준비할 때 가장 궁금했던 부분 중 하나였다.

독일은 등록금 부담이 거의 없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내가 석사과정을 시작했을 당시 학생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학교 등록증과 슈페어콘토(Sperrkonto)라는 재정보증 계좌가 필요했다. 일정 금액을 예치하면 매달 정해진 생활비를 인출할 수 있는 방식이다.

당시 나는 학교 기숙사에 입주할 수 있었고,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생활할 수 있었다. 또한 학생들은 HiWi(Hilfswissenschaftler)라고 불리는 학생 연구보조원으로 근무할 수 있는데, 나 역시 학업과 병행하며 추가적인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박사과정이나 박사후연구원 단계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대부분의 대학과 연구기관에서는 독일 공공기관 임금체계(TV-L 또는 TVöD)에 따라 급여를 지급한다. 다만 연구기관과 계약 조건에 따라 급여 수준과 계약 형태는 달라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박사후연구원은 독일에서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급여를 받으며, 재정적인 이유 때문에 연구를 지속하기 어려운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물다.

돌아보며

독일은 나에게 여러 번의 기회를 준 곳이다. 석사과정으로 처음 독일에 왔을 때도, 박사학위를 마친 뒤 다시 연구자로 돌아왔을 때도 독일은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무대가 되어 주었다. 이 글을 쓰면서 그동안의 여정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어느 하나 쉽지 않았고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은 일도 많았다. 그러나 그 과정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연구를 하다 보면 개인의 노력만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그렇지 않았다. 좋은 지도교수님과 연구자들, 동료들의 도움, 그리고 적절한 시기에 찾아온 기회와 운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앞으로도 독일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좋은 연구를 수행하고, 연구자로서 한 단계씩 성장해 나가고 싶다.

앞으로도 독일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연구를 수행하고, 국제적인 연구 환경 속에서 연구자로서 한 단계씩 성장해 나가고자 한다. 아직 가야 할 길은 멀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 새로운 도전 앞에서도 꾸준히 배워 나가며 다음 커리어를 준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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