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unsup AHN
Artificial Intelligence
Senior product owner at HERE Technologies
* 유럽 진출 경험담 인터뷰(윤송학)를 바탕으로 작성
2007년 10월 부터 지금까지 유럽에서의 근 20년 생활을 돌아보는 시간 가질 수 있도록 지면을 허락해 주신 관계자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새로운 시작 _ Jülich & Aachen 에서의 생활
저는 부산에서 태어나, 자라고, 부산 대학교를 2000년에 졸업하였습니다. 2007년 2월POSTECH에서 석사, 박사 학위 연구를 마쳤습니다.
박사 학위를 마치고, 연구재단 학술연구지원사업, 박사후 국외연수 장학금을 받고 독일 율리히 연구센터 (Forschungszentrum Jülich)에서 2007년 10월 첫 해외 포닥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낙엽이 아름답게 떨어져 쌓여가던Jülich에서의 첫 독일 생활은 그리 편하지 않았습니다. 70-80년대에 지어졌을 법한 게스트하우스는 인터넷이 전혀되지 않았고, 율리히 시내 인터넷 카페에서 무한도전 1편을 다운 받는게 1시간이 넘게 걸리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아날로그 활동을 하며 독일을 느낄 수 있었던 다른 한편으로 인상적인 시절이었습니다.
한국인이 금새 그리워진 우리 부부는 아헨 (Aachen) 에 집을 구하고 연구소는 아헨에서 출퇴근 하였습니다. 1년의 우리나라 연수 장학금이 끝날때 쯤, 저의 직속상사 (immediate supervisor)는 율리히 연구소 장학금을 제안해 주셨고 다시 1년을 더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장학금을 받는 신분이라서 근로계약상 근무 시간을 준수하거나 휴가에 제약이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실적을 내고 해외저널 논문을 출판해야 다음 직업을 구할 수 있는 포닥의 일반적인 실적 압박감과 불안감을 가지고 열심히 연구했던 기억이 납니다.
야심차게 기대했던 차세대 에너지 저장 장치, 슈퍼커패시터 (Supercapacitor)가 현실적으로 구현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기까지 채 2년여의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일본 기업으로부터 큰 연구비 투자를 기대하던 직속 상관과 동료들에게 저의 솔직한 의견을 전하던 날이 생각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너무 고지식 했다 싶습니다.
세상의 많은 아이디어는 아이디어로 끝이 납니다. 스티브 잡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새로운 제품이 시장에 나오기까지 “Tremendous amounts of craftmanship in between great Idea and great product in a new and different way” 가 필요합니다.
똑똑하지도 않고 열심히 실험하지도 않았던 1명의 포닥이 짧은 2년의 시간 동안 잡스가 말한 조건을 만족시키기는 불가능했습니다. 다만, 돌아보면 현실적으로 내가 하기 어렵다하여 불가능한 컨셉이라고 단언했어야 했나.
치기 어린 포닥 시절 저 자신에 대한 안타까움과 과제비를 이끌어 내기 위해 물밑으로 여러 방법으로 노력했던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이 쓰다보니 떠오릅니다. 그 미팅 이후, 직속 상관은 저에게 차가워 졌습니다.
2008년 봄부터 2009년 겨울까지 건강상의 문제와 아내의 임신등 여러가지 개인적인 일들이 있었지만 이 글에서 다 밝히기는 어려울 듯 하네요. 그렇게 이직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림 1. (좌) 2007년 10월의 어느날 율리히 지금도 10월이 되면 똑같을 거 같음.
(우) 2007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우리연구소 페터 그륀베르크 교수님과의 한 때.
우연은 정말 우연인가? – Zürich 에서의 생활
이직을 준비하며 한국과 유럽의 많은 연구기관에 이력서 및 지원서를 보냈습니다.
2009년 12월 18일 금요일 저녁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율리히 연구소 사무실에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독일의 연구소 연구원들은 금요일 오후 4시 이후에는 대부분 집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연구소에서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아헨 – 율리히 차량 공유를 해주던 동료 A가 그날 점심 갑자기 개인적인 사정으로 급히 연구소를 떠나게 되어, 다른 동료 B의 차를 섭외해 주었습니다. 오후 3시쯤 출발하자하던 동료 B는 급하게 클린룸에 일이 터졌다며 조금 더 기다려 달라 양해를 구하였습니다. 4시가 5시가 되고 6시가 되었습니다. 저는 조급했지만, 어짜피 늦은 거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저녁 어둡기가 칠흑같던 독일의 12월 중순, 갑자기 사무실 전화가 울렸습니다. 전혀 기대도 하고 있지 않았던 스위스 연방재료연구소 Empa에 제가 지원했던 부서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저는 한국에서 2번째 비정규직 포닥 생활을 시작했을 겁니다. 사실 모든 걸 다 정리하고 한국 대전 표준과학연구원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타는 일만 남았었는데 말이죠.
짧은 전화 인터뷰 이후, 아내를 설득해 유럽에서의 마지막 인터뷰를 경험삼아 보게 해 달라하고 12월 21일 월요일 아침 스위스 취리히 주에 있는 뒤벤도르프 (Dübendorf)에서 현장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인터뷰는 잘 마쳤고, 교수님은 마지막으로 율리히 연구소 우리 부서 Prof. Waser 교수님의 reference check 을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12월 24일 독일 크리스마스 휴일 아침에 개인 전화 번호를 알아내어 reference check 을 하셨다고 나중에 알려주셨습니다.
한국으로 가기로 되어 있던 저와 가족의 삶은 급하게 스위스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봅니다. 우연은 정말 우연인가? 그 모든 기묘한 우연의 순간 순간들이 모여 한 방향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스위스에서의 6년여의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스위스에서의 삶은 한인과학기술자네트워크 코센에 쓴 포토에세이, '스위스 연방 재료과학기술연구소 (Empa) 에서의 연구원 생활'을 참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림 2. 스위스연방재료 연구소에서의 연구원 생활
Royalty pays - Stuttgart 에서의 생활
스위스에서의 6년 생활 후, 함께 했던 Prof. Weidenkaff교수님을 따라 슈튜트가르트 대학교로 이직하였습니다. 스위스에 계속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외국인 신분인 저와 우리 가족의 체류허가증 갱신을 도와 줄 수가 없었습니다. 슈투트가르트에서의 생활을 돌아보면 답답한 독일 연구 생활에서 숨을 쉬게 해 준 여러 시간들이 생각납니다.
Vaihingen 연구소 단지 숲에서의 조깅. 한국인 연구자 동료들과의 점심 식사 자리에서의 담소와 바베큐 파티. 마지막으로 여러 비영리 단체 활동들, 특별히 재독한국과학기술자협회 (VeKNI) 및 유럽한인재료소재협회 (KEMST), 한인공학기술자 (K-TAG) 활동으로 인연을 맺게된 소중한 인간관계들. 빡빡한 연구원 업무 중에도 잊지 못 할 기억이 되었습니다. 결국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오늘 지금 만날 수 없어도, 언제든 만나면 반갑게 인사 나눌 좋은 시절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 남았습니다. 커가는 첫째와 둘째와의 소소한 일상의 시간들 (자전거 타는 걸 가르쳐 주고, 딸기 따러 가던 시간들, 눈 오는 겨울 집 앞에서 포대자루 타던 날들) 과 계절을 따라 (성령강림절, 여름, 겨울) 휴가를 떠나던 시간들도 너무 소중한 유럽 생활의 기억입니다.
그림 3. Vaihingen 한국인 연구자 동료들과의 점심 식사 자리에서의 담소와 때때로 함께 했던 바베큐 파티.
박사후 연구원으로 휴가중에도 진행했던 이산화탄소 저감 실험들도 기억이 납니다. 크리스마스, 연말연초중에도 개발한 촉매를 이용한 이산화탄소 저감 정도를 알아내기 위해 슈투트가르트 기차 S1를 타고, 살고 있던 동네 Ehingen에서 Vaihingen으로 혹은 차를 몰아서 낮이고 밤이고 새벽이고 정해진 시간 맞춰서 샘플링하러 다니던 슈투트가르트 대학교 실험실 작은 골방을 아직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슈트가르트에서의 3년여의 연구 활동을 뒤로 하고 저는 스위스에서 부터의 Prof. Weidenkaff 교수님의 권유로 함께 프랑크푸르트 인근 Hanau에 Fraunhofer IWKS연구소로 이직을 하였습니다. 제가 힘들때 이직을 권고해 주신 교수님에 대한 감사함을 잊을 수 없습니다. 교수님께 연구자로서의 충성심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속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에 진 빚은 여전히 남아 아직도 그 마음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림 4. KEMST 포럼 (https://kemst-eu.org/pages/activities)
새로운 시작 - Hanau 에서의 생활
2019년 1월 이직 후 지금까지 Hanau에 있는 Fraunhofer IWKS에 연구원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폐배터리 재활용 관련 연구를 진행하며 저녁이 있는 워라벨의 삶을 누렸습니다. 지금까지의 유럽 생활을 돌아보니, 가정에서든, 연구에서든, 또 다른 활동에서든 중요한 건 관계 였던 거 같습니다. 공자님이 말한 인간 관계의 핵심인 '인(仁)'이라는 도덕적 가치와 '예(禮)'라는 사회적 규범 사이의 조화를 생각합니다. 공자님은 관계를 이익이 아닌 의로움으로 맺어야 하며, 타인에 대한 배려, 자기 수양이 관계의 가장 기본이라고 강조했었습니다.
물론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의 경영 철학의 핵심 "모든 관계는 상호 시너지(Mutual Synergistic)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여전히 믿습니다. 관계의 상호 호혜성과 시너지가 있어야 겠지요.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수 있도록, 있고 싶은 자리에 함께 있어준 많은 분들을 떠올립니다. 유럽에서의 20년의 시간은 제게 개인적으로 힘든 일도 많았고, 연구원 생활로 힘겨운 점들도 있었습니다. 여러 모양으로 고달픈 삶을 살았지만, 돌아보면 늘 위로가 되는 사람들이 곁에 있었습니다. 도와주고 함께 해 준 분들에게 말로는 표현 못 할 감사를 전합니다. 이제 다시 또 시작입니다.
그림 5. (좌) Fraunhofer IWKS 연구소동료들, (우) K-FAST 사진, https://www.linkedin.com/feed/update/urn:li:activity:7423772496669261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