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Hee LEE
Advanced Mobility
Postdoc at Deutsches Zentrum für Luft- und Raumfahrt
솔직히 말하자면, 유럽진출 경험을 글로 남긴다는 것 자체가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다. 나의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일반적인 사례가 아니고, 그야말로 우연과 선택이 겹친 예외적인 경험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처럼‘ 일단 부딪혀보자’는 사람들에게는 작은 참고가 될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기록한다.
한국에서 석사 과정을 마칠 무렵,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미국보다는 유럽을 경험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알아보니, 유럽은 미국과 달리 공식적인 지원 절차나 모집이 거의 없어서, 네트워킹이 없으면 연구직이나 박사 자리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여러 곳에 연구직이나 박사과정 자리를 구한다는 이메일을 보내봤지만, 결국 모두 연락을 받지 못했고, 유일하게 합격한 곳은 베를린 공대의 석사 과정이었다. 그렇게 나는 두 번째 석사 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마음속에는“일단 가보자, 가면길이 보이겠지”라는 생각으로. 이렇듯 나는 대체로 큰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편이다.
베를린에서의 첫 도전
베를린에 도착했을 때, 현실은 생각보다 더 녹록지 않았다. 가장 큰 장벽은 역시나 경제적 어려움. 장학금이나 다른 펀딩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가지고 간 돈을 다 쓰기 전에 무언가 수입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아르바이트조차 언어 장벽 때문에 쉽지 않았다. 이러한 불안감 속에서 베를린이라는 도시도, 학교생활도 제대로 즐기지 못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에서 랜드마크인 텔레비전 TV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그나마 간간히 학생 할인이 많이 되는 베를린 필하모니의 공연을 보는 등, 돈이 많이 들지 않는 취미 위주로 즐겼던 것 같다.
베를린 필하모니 건물 전경. 대학생들은 할인된 가격으로 공연을 훨씬 저렴하게 감상할 수있다.
작은 시도, 큰 기회
베를린에서의 석사과정 중 나는 학교에서 프로그램 학생들을 위한 워크숍이나 외부 강사의 초청강연이 있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어필할 기회가 생기면 짧게라도 강사나 관계자에게 한국에서 했던 연구를 소개하고, 내가 구직 중이라는 것을 알렸다.이러한 시도를 반복한 끝에, 운좋게 에어버스에서 학생 일자리를 얻어 독일 남부 보덴제 지역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보덴제 지역의 린다우라는 도시에 곳에 놀러 가서 찍은 사진
보덴제는 알프스가 가까워 자연환경이 아주 아름다운 지역이지만, 외국인으로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베를린과 달리 친구를 사귀는 것이 쉽지 않았고, 언어장벽도 특히 크게 느껴졌다. 외국인이많은 베를린에서는 많은 곳에서 영어가 통했지만, 외국인 비중이 매우 낮았던 그당시 보덴제에서는 외국인청에서의 행정 업무조차 독일어로 처리해야 했다. 그래서 병원에 가거나 관공서를 방문할 때 항상 독일어를 사용해야 했고, 그때마다 번역기를 돌리며 필요한 문장들을 외워가는 긴장감은 상당했다. 하지만 억지로라도 독일어를 사용해야하는 환경 덕분에, 언어에대한 두려움을 자연스럽게 극복할 수 있었다.
뮌헨으로의새로운 도전
에어버스에서 6~7개월의근무가 끝날 무렵, 나는 다시 새로운 자리를 찾아 나섰다. 회사와 학교에 다양하게 지원한 끝에 뮌헨 공대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할 기회를 얻었다. 사실 마음 한편으로는 박사과정보다 회사에 들어가보고 싶은 생각도 컸지만, 기회가 닿지 않았었는데, 당시 지도해주던 회사 소속 연구자들과 상의한 끝에 박사과정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또다시 계획에 없던 박사과정을 새로운 도시에서 시작하게되었다.
뮌헨 또한 처음에 적응하기 쉬운 도시는 아니었다. 보덴제보다 두세 배는 비싼 월세, 다소 보수적인 로컬들의 첫 인상. 박사과정 연구 주제 역시 나에게 큰 도전이었다. 한국에서의 석사 논문과 독일 에어버스에서의 인턴 경험까지는 주로 인공위성 정밀 자세 제어와 관련된 일을 했었는데, 박사과정에서 맡게 된 연구 주제는 로보틱스에 가까웠다. 카메라기반의 센서 퓨전을 활용해 다중 에이전트(Multi-agent) 항법시스템을 구축하고 실험하는 것이 핵심 과제였는데 ,하드웨어경험이 거의 없고, 주로 항법이 아닌 제어를 다뤄왔던 나에게는 상당히 도전적인일이었다.
다행히 연구실 동료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었고, 덕분에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무리 지을 수 있었으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 경험은 단순히 학문적 성장을 넘어, 현재독일 항공우주연구소(DLR)에서 수행하는 연구와도 깊게 연계되어 있었다. 즉,박사과정에서의 도전적 경험이 현재의 취업과 연구 활동을 가능하게 해준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날씨가 좋았던 여름날에 뮌헨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찍은 사진. 배경에 뮌헨 올드시티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Frauenkirche가 보인다.
코로나, 그리고 연구소 생활의 시작
학교 업무를 마치고 새 직장을 구해야 하는 타이밍에 코로나 팬데믹이 터졌다 .구직이 매우 어려웠지만, 다행히 연구소에 취직해서 어느새 그룹 리더가 되어있던, 뮌헨 공대 연구실 전 동료가 현재 내 포지션을 제안해 주었다. 덕분에 현재는 독일 항공우주연구소(DLR)에서 도심 항공 모빌리티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세부적으로는 위성항법을 보완할 수 있는 이미지 기반 항법 기술에 관해 연구하고 있고, 안정적인 항법 알고리즘의 상용화를 목표로 프로젝트 관리와 시스템 관리에도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다양한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프로젝트를 하이레벨에서 관리하는 시스템엔지니어링 분야에도 관심을 갖고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이는나에게 주어진 또다른 새로운 도전 과제라고 할 수 있으며, 앞으로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중요한 발판이 되리라 생각한다.
마치는 글
돌이켜봐도 역시나 나는 미래를 세세히 설계하는 편은 아니었던것 같다. 그래서 계획이 있어야 마음이 편한 분들에게는 나의 여정이 다소 불안정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처럼 즉흥적 도전으로 새로운 길을 찾는 사람들에게, 이런 궤적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면 그걸로 충분할 것 같다. 막상 부딪혀 보면, 생각보다 별거 아닌 일들도 많다. 도전은 언제나 두렵지만, 해보면 결국 새로운 길이 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