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RC 서포터즈] 나의 유럽진출 경험담 – 이승혜(독일/첨단바이오)

Seung-hye LEE

Advanced biotechnology

PhD candidate at Ludwig Maximilian University of Munich

1. 나의 첫 유럽, 폴란드

평생을 포항에서 나고 자라며 늘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습니다. 학부를 다니는 내내 외국 드라마에서만 봐왔던 해외 대학 생활을 상상하며 교환학생을 준비했고, 졸업 직전 마지막 학기를 교환학기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체코 프라하의 화학대학교로 갈 예정이었으나, 교환교의 사정으로 인해 갑자기 폴란드로 파견되게 되었습니다. 출국 직전까지도 폴란드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언어를 쓰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런 기대 없이 간 곳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인생의 터닝포인트라 할 만큼 새로운 경험들을 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6개월만 머무르는 교환학생에게도 실험실 인턴의 기회가 주어졌고, 저는 폴란드 포즈난(Poznań)의 아담 미츠키에비치 대학교(Adam Mickiewicz University)에서 식물분자생물학 실험실 인턴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턴기간 내내 유럽의 수평적인 분위기와 주변 유럽 국가들과 국경을 넘나드는 협업 문화에 큰 매력을 느끼게 되었고, 유럽에서 계속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유럽 대학원 진학을 알아보게된 첫번째 계기였습니다.

교환학생을 했던 폴란드 포즈난 풍경

2. 본격적인 학업의 시작 – 독일 석사 유학

폴란드에서 인턴을 했던 파견교와 지도교수님 모두 굉장히 만족스러워 이곳으로 석사 진학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폴란드 사립대학은 외국인에게 높은 등록금을 부과했습니다. 월급이나 장학금을 받는 한국 석사와는 달리, 유럽에서 석사를 하는 경우 자비로 유학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등록금까지 부담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이런 고민에 대해 그 당시 인턴 지도교수님께서 옆 나라 독일로 가면 등록금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셨고, 그 이야기를 계기로 독일 대학원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독일의 훌륭한 연구 인프라와 영어만으로 석사 과정을 이수할 수 있다는 점은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다만 한 가지 혼란스러웠던 점은, 한국처럼 입시 시즌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각 학교마다 원서 접수 기간과 입시 방법이 모두 달라 하나하나 찾아봐야 했다는 점이었습니다. 만약 독일 석사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면, 엑셀을 활용하여 지원하고자 하는 모든 대학의 입시 정보를 표로 정리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각 대학별로 지원시기, 지원과정, 인터뷰 유무, 필요 서류가 모두 달라 마감시간별로 구별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여러 대학 중에서도 분자생물학을 영어로 배울 수 있는 독일 예나대학교(Friedrich Schiller University Jena)로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예나에서의 석사 생활은 제가 상상했던 것과는 꽤 달랐습니다. 독일 석사 과정은 초반에는 연구보다 수업을 듣고 시험을 치는 데 중점이 맞춰져 있어, 석사 1년 차까지는 학부의 연장선처럼 느껴졌습니다. 모든 시험을 낙제 없이 통과하면 연구실에서 인턴을 하고, 그 뒤에 석사 논문을 쓰는 구조였습니다.

세 번 이상 시험에서 떨어지면 대학에서 제적을 당하고 동일한 과로 독일 입시를 볼 수 없었기에 매학기 간절한 마음으로 시험에 응했습니다. 하지만, 겨우 시험을 통과하고 연구 학기로 넘어와도 모든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당시 코로나19 사태와 겹쳐 독일의 연구소 대부분이 문을 닫았고, 이에 따라 연구학기를 보낼 연구소를 찾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연구소를 검색하고 지원서를 보내며, 직접 받아주는 곳을 찾아야 했습니다. 저는 당시 60장 가까운 지원서를 냈지만, 대부분은 코로나로 인해 일정 기간 랩이 닫는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그러던 중, 예나에 있는 FLI(Leibniz Institute on Aging – Fritz Lipmann Institute)에서 인턴십 합격 소식을 받았고, 이후 인턴을 마친 뒤 석사 논문까지 이어서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어렵게 구한 포지션인 만큼, 훌륭한 교수님과 슈퍼바이저로부터 제대로 된 연구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대다수의 독일 유학생들이 경험했듯, 한국과는 달리 체계적으로 정해진 규칙 없이 스스로 자신의 길을 구성해가야 했고, 그 과정은 꽤 도전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많은 성장과 경험이 쌓였고, 낯선 고난을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힘을 키워주었습니다.

예나의 상징인 옌타워와 석사 졸업논문

3.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기 – 독일 박사 유학

석사 졸업 이후는 예상보다 꽤 큰 혼란의 시기였습니다. 독일에서 석사 과정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도 잠시였고, 그동안 '졸업'이라는 하나의 목표에만 집중해 있었던 터라 그 이후의 진로에 대해 충분히 고민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졸업 전, 이미 독일과 이스라엘의 연구기관에 박사 지원서를 넣어둔 상태였고, 졸업 시점에 총 세 군데로부터 박사 오퍼를 받은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연구 주제를 깊이 들여다보면서 ‘이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연구일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고, 결국 모든 오퍼를 거절하고 한국으로 일단 귀국하였습니다.

그 이후로는 오랜 시간 동안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박사를 정말 해야 하는가?’ ‘한다면 어떤 연구를, 어떤 환경에서 하고 싶은가?’ 이 고민을 풀어가기 위해 제가 선택한 방법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링크드인과 같은 구인·구직 사이트를 하루 종일 살펴보며, 제가 하고싶은 모든 직종의 채용 공고를 확인했습니다. 공고에서 요구하는 자격 요건을 분석해보니, 제가 하고싶은 일은 모두 박사학위를 기본적으로 요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비로소 확신이 생겼습니다. 박사 학위는 단순히 학문을 위한 과정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하나의 조건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기 때문입니다. 현재 박사과정 중에도 어려움은 많지만, 이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하거나 흔들린 적은 없습니다.이 과정을 지나야만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혹시 석사 졸업 후 진로 계획에 고민이 있다면 최대한 다양한 포지션을 확인해보고 그 포지션들이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해보길 추천합니다.

독일의 박사과정은 대부분 구인·구직 사이트에 모집 공고가 올라오거나, 연구소 자체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외에도 누군가의 추천으로 내부 선발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제법 있어 원하는 랩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직접 연락을 해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저는 앞서 언급한 모든 방법으로 박사 과정에 지원했는데 직접 관심 있는 교수님께 메일을 보내기도 했고, 공고를 통해 정식으로 지원해 인터뷰를 보고 오퍼를 받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제가 일하고 있는 뮌헨대학교 수의대학 생화학과 연구실은 2박 3일간의 대면 면접을 통해 선발되었습니다. 3일 동안 함께 실험을 해보고, 연구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가 잘 맞는 상대인지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양한 기관으로부터 인터뷰를 보고 오퍼를 받았지만, 이렇게 실제 연구소를 보고, 함께 연구할 사람들을 만나보는 과정을 거친 곳이 더 마음이 간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독일 박사를 준비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여건이 허락하는 선에서 잠시라도 독일에 머물며 관심 있는 연구소를 직접 방문해보고, 대면 인터뷰를 경험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뮌헨의 첫인상 마리엔플라츠

4. 나의 꿈은 현재 진행형 - 한치 앞도 모르는 인생에서 즐거움 찾기

유럽진출 경험담이라는 거창한 주제로 글을 쓰고 있지만, 쓰는 내내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나'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하루라도 마음 편한 날이 없을  만큼 다사다난한 학위 과정 중이지만 이렇게 글로 남겨보니 힘들었던 오늘 하루도 나의 치열한 고군분투의 기록으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계획을 세우고 많은 염려를 하지만, 삶은 “그냥 한번 해볼까?” 라는 생각에서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체코로 지원한 교환학생이 취소되어, 우연치 않게 폴란드로 와서, 독일 대학원을 추천 받고, 정신차려보니 독일에서 박사과정을 마치는 중인 저의 인생도 우연과 우연이 겹쳐 만들어진 서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인생이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듯이, 모든 염려가 걱정한대로 이루어지는 않습니다. 혹시 유럽 진출을 마음에 품고 계시지만 용기가 나지 않는 다면, 일단 한번 발을 내디뎌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예상한 것보다 어렵지만, 걱정한 것보다는 즐거운 과정이 되리라 의심치 않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의 꿈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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